제24비행대대 (핀란드)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제24비행대대(핀란드)는 1933년 핀란드 공군 조직 개편으로 창설된 부대로, 카렐리야 지협 우티에 주둔했다. 핀란드 공군 최초로 2기 1조 전술을 사용했으며, 글로스터 게임콕 III, 포커 D.XXI, 브루스터 F2A 버팔로, 메서슈미트 Bf 109G 등 다양한 전투기를 운용했다.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 참전하여 소련 공군과 교전, 많은 적기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다. 1944년 12월 제31비행대대로 개칭되어 해체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핀란드 제2비행연대 - 제2비행연대 (핀란드)
핀란드 공군의 제2비행연대는 겨울 전쟁, 계속 전쟁, 라플란드 전쟁 등 핀란드의 주요 전쟁에서 전투기 부대를 운용하며 다양한 기종의 항공기를 사용한 비행연대이다. - 핀란드 공군의 비행대대 - 제32비행대대 (핀란드)
핀란드 공군의 제32비행대대는 1930년 제1 비행대를 모체로 설립되어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에서 정찰 및 전투 임무를 수행하며 활약했으나 1945년에 해체되었다. - 핀란드 공군의 비행대대 - 제34비행대대 (핀란드)
1943년 5월 핀란드 공군에 창설된 제34비행대대는 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를 운용했으며, 이후 기종을 변경하고 노획한 호커 허리케인도 보유했다. - 핀란드 제3비행연대 - 제32비행대대 (핀란드)
핀란드 공군의 제32비행대대는 1930년 제1 비행대를 모체로 설립되어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에서 정찰 및 전투 임무를 수행하며 활약했으나 1945년에 해체되었다. - 핀란드 제3비행연대 - 제3비행연대 (핀란드)
제3비행연대 (핀란드)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핀란드 공군에 존재했던 연대로, 계속전쟁과 라플란드 전쟁에 참전했으며 종전 후 재편성되었고 다양한 기종의 전투기를 운용했다.
제24비행대대 (핀란드)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명칭 | 제24비행대대 |
원어 명칭 | Lentolaivue 24 (핀란드어) |
약칭 | LLv.24, HLe.Lv.24 |
군사 정보 | |
활동 기간 | 1934년 10월 10일 - 1944년 12월 4일 |
국가 | 핀란드 |
소속 | 핀란드 공군 |
병과 | 전투기 |
역할 | 제공권 |
규모 | 대대 |
명령 체계 | 제2비행연대 |
본부 | 우티 → 암몰라 → 말미 → 베시베흐마 → 셀랜패 → 술라얘르비 → 라펜란타 |
장비 | |
전투 및 작전 |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겨울전쟁 계속전쟁 |
주요 지휘관 | |
지휘관 | 리하르트 로렌츠 구스타브 에리크 마그누손 |
2. 부대의 역사
핀란드 공군은 1933년 7월 15일 조직을 개편하여 더 많은 항공기와 비행장을 만들고 새 부대들을 편성했다. 제24비행대대는 이때 새로 만들어진 부대들 중 하나로서 콧카 북쪽, 카렐리야 지협에 인접한 우티에 주둔했다. 초대 대대장 리하르트 로렌츠는 당대 일반적이었던 3기 1조 전술 대신 2기 1조 전술을 선택했다. 이 전술은 아마 핀란드 공군에서 처음 고안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루프트바페에 의해 굳어져서 오늘날까지 표준적 전술로 이어지고 있다. 제24비행대대는 핀란드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영국제 글로스터 게임콕 III 전투기를 사용했다. 이후 1937년 네덜란드제 포커 D.XXI 전투기로 주력 기체를 교체했다.
1939년 11월 30일 소련이 핀란드를 공격했을 당시, 제24비행대대는 여전히 포커 D.XXI를 사용하고 있었다. 헬싱키에 대한 폭격으로 전쟁 첫날에만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포커 전투기들은 폴리카르포프 I-16, 폴리카르포프 I-153 같은 소련 전투기보다 성능이 열등하다고 여겨졌기에, 핀란드 전투기들은 불필요한 손실을 막기 위해 적 전투기와 교전하기보다는 적 폭격기를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최초의 격추는 12월 1일에 이루어졌으며, 투폴레프 SB 폭격기 11기가 핀란드 공군에게 격추되었다. 최초의 피격추는 아군 오인사격으로 인한 것으로, 핀란드의 대공포가 핀란드 전투기를 격추시켰다. 악천후로 인해 전쟁 중 여러 차례 공중작전이 중단되었지만, 제24대대는 12월 19일 I-16 전투기 2대를 포함해 적기 12기를 격추하여 1939년 12월 말까지 총 54기를 격추했다. 핀란드군의 피해는 1기 격추, 1기 파손뿐이었다. 공군이 선전을 거둠과 동시에 육군 역시 모든 전선에서 붉은 군대의 진격을 막아냈다.
요르마 사르반토는 4분 만에 일류신 DB-3 폭격기 6기를 격추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쳐 24대대 최고 에이스이자 핀란드 공군 전체 최고 에이스가 되었다. 1940년 1월 말까지 핀란드군은 적기 34기를 격추시키고 1기를 잃었다. 이로써 대대 병력은 항공기 28기로 줄어들었다.
1월 말이 되자 소련 전투기들의 전술이 바뀌어서 낙하탱크가 도입되고 소련 조종사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소련 전투기들은 폭격기를 핀란드 내륙 깊숙이까지 호위했고 때로는 전투기 40-60 기가 떼로 핀란드 내륙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2월 1일, 붉은 군대는 카렐리야 지협의 만네르헤임 선을 돌파하는 것을 목표로 공세를 개시했다. 제24비행대대는 전선을 순찰하면서 아군 지상병력을 보호했다. 2월의 어느 날에는 하루에 88회 출격을 할 정도로 바빠졌다. 활동이 길어질수록 부담과 손실이 누적되었다. 제24비행대대는 2월에 적기 27기를 격추하고 6기를 잃었다. 격추되어 사망한 조종사 중에는 덴마크인 의용병도 두 명 있었다. 이제 대대 병력은 항공기 22기로 줄어들었다.
3월이 되자 육상 전투 무대가 비보르그 만 방면으로 옮겨갔다. 붉은 군대는 얼음을 건너 남부 핀란드로 침공하려 했고, 핀란드 공군 전체가 동원되어 이 공세를 막아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제24비행대대는 이때 154회 출격하였다. 3월 13일 모스크바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제24대대는 겨울전쟁 발발 시점에 전투기가 36기였고 종전 시점에는 22기가 남았다. 적기 120기를 격추했고 그중 100기는 폭격기였다. 손실은 11기였고 그 중 적에게 격추된 것은 9기, 2기는 아군의 오인사격이었다.
; 겨울전쟁 당시 제24비행대대 에이스
- 요르마 사르반토: 13기 격추
- 빅토르 퓌외트시애: 7.5기 격추
- 타투 후하난티: 6기 격추 (1940년 2월 29일 격추되어 사망)
- 페르에리크 소벨리우스: 5.5기 격추
1940년 4월 19일, 제24비행대대는 주력 기종을 미국제 브루스터 239 버팔로로 교체했다. 이 기종은 당시 핀란드 공군 최고의 전투기로 평가받았다. 대대는 라흐티 동쪽 베시베흐마로 주둔지를 이전했다. 소련과 핀란드 사이의 관계는 매우 긴장된 상태였으며, 양측 모두 전쟁 재발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14개월간 지속된 평화 기간 동안, 제24비행대대 조종사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며 전투력을 강화했다. 지상에는 조기경보 시스템이 구축되어 적기 발견 시간을 단축시켰다.
1941년 6월 25일, 소련의 공격으로 계속전쟁이 발발하자 제24비행대대는 브루스터 버팔로 전투기로 참전했다. 전쟁 첫날, 제24비행대대는 피해 없이 적 폭격기 10기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다. 6월 25일에서 30일 사이에는 핀란드 남부를 방어하며 MBR-2 수륙양용기 2기와 PE-1 1기를 포함, 총 17기의 적기를 격추했다. 이 과정에서 사고로 버팔로 1기를 손실했다.
7월 3일, 제24비행대대는 란타살미 공군기지로 이동하여 제2비행연대 전체, 제12비행대대와 제16비행대대, 제4비행연대의 브리스틀 블렌헤임 폭격기와 함께 카렐리야 육군의 작전을 지원했다. 7월 8일부터 소련군의 공격에 맞서 자체 피해 없이 적기 11기를 격추했다. 1941년 말까지 제24비행대대는 2기 손실(1기는 적에게 격추, 1기는 사고)에 적기 135기를 격추하는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1941년 12월 말, 핀란드 육군이 작전 목표를 달성한 이후 계속전쟁은 참호전 양상으로 변화했다. 소련 공군은 호커 허리케인 IIA와 IIB 등 신형 전투기로 재무장했고, 무기대여를 통해 핀란드 전선에 투입되었다. 북부 카렐리야에 주둔하던 제14비행대대는 구형 포커 D.XXI를 사용하고 있어 소련의 신형 전투기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이에 제24비행대대 병력 일부가 티크섀르비 방면 방어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미그-3 및 허리케인과 교전하여 처음으로 전투 손실(버팔로 3기 격추)을 입었지만, 동시에 소련군 8기 이상을 격추했다.
1942년 겨울, 호글란드 전투에서 제24비행대대는 전투기 6기로 지상 병력을 지원했다. 일마리 유틸라이넨은 적기 2기를 격추하며 총 20기 격추를 기록,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받았다. 핀란드군은 섬을 점령했고, 이후 제24비행대대는 핀란드만에서 북부 카렐리야에 걸쳐 방공 전력을 보조했다. 9월 8일에는 요르마 카르후넨도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받았다.
한편, 소련군은 LaGG-3, La-5, Il-2 스투르모비크, Yak-1, Yak-7 등 더욱 발전된 전투기로 재무장했다. 1943년 초, 제24비행대대의 버팔로는 24기로 줄어들었고, 독일제 메서슈미트 Bf-109G 신예기로 제34비행대대가 편성되었다. 제34비행대대에는 일마리 유틸라이넨(당시 격추수 34기), 에이노 루카넨(당시 격추수 14.5기) 등 제24비행대대 최고 에이스들이 차출되었다. 7월 31일에는 한스 빈드 대위가 격추수 31기를 기록하고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받았다.
1944년 초, 제24비행대대는 "제24전투비행대대"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버팔로는 17기로 줄어들었다. 이후 Bf 109G로 기종 전환을 시작, 1944년 5월에는 Bf 109G 14기를 운용했다. 1944년 6월 9일, 소련의 대공세에 맞서 제24비행대대는 카렐리야 지협 남부 술라얘르비에 주둔하며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6월 14일 시란매키-쿠테르셀캐 전투에서 벌어진 대규모 항공전에는 1,700여 기의 소련 군용기가 동원되었다. 6월 15일, 제24비행대대는 라펜란타 공항으로 이동했다. 6월 17일, 라우리 니시넨 중위(당시 격추수 32.5기)와 사르야모 중위(당시 격추수 12.5기)가 메서슈미트 충돌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 제3공격비행단 쿨마이 분견대가 핀란드에 파견되어 큰 도움을 주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제공권을 장악하여 조선인민군 지상군에 큰 타격을 입혔던 것처럼, 계속전쟁에서도 제공권 장악은 매우 중요했다. 제24비행대대는 핀란드 공군의 핵심 전력으로서 소련 공군에 맞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며, 핀란드의 독립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핀란드 공군은 열세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소련 공군에 큰 피해를 입히며 제공권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 계속전쟁 주요 에이스
일마리 유틸라이넨: 94기 격추 (핀란드 공군 전체 최고 에이스, 이중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한스 빈드: 75기 격추 (이중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에이노 루카넨: 56기 격추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올라비 푸로: 36기 격추
닐스 카타야이넨: 35.5기 격추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라우리 니시넨: 32.5기 격추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작전 중 사망)
큠스티 카르힐라: 32기 격추
요르마 카르후넨: 31기 격추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에밀 베사: 29.5기 격추
타피오 예르비: 28.5기 격추
1944년 9월 핀란드와 소련의 단독 휴전으로 계속전쟁이 종결되었다. 그때까지 제24비행대대는 총 763기의 적기를 격추하고 30기(그 중 적에게 격추된 것은 26기)를 손실했다. 교환비로 따지면 제24대대 전투기 1기를 격추하기 위해 소련 전투기 29.3기가 희생된 격이었다. 제24비행대대 조종사 중 네 명이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받았으며 두 명은 2회 수훈받았다.
1944년 12월 4일 제31비행대대로 개칭되면서 제24대대는 소멸했다. 제31대대는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중인 부대이며 F-18을 주력기로 사용 중이다.
2. 1. 설립 (1933-1939)
핀란드 공군은 1933년 7월 15일 조직이 개편되어 보다 많은 항공기와 비행장이 만들어지고 새 부대들이 편성되었다. 제24비행대대는 이때 새로이 만들어진 부대들 중 하나로서 콧카 북쪽, 카렐리야 지협에 인접한 우티에 주둔했다. 초대 대대장 리하르트 로렌츠는 당대 일반적이었던 3기 1조 전술 대신 2기 1조 전술을 선택했다. 이 전술은 아마 핀란드 공군에서 처음 생각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루프트바페에 의해 굳어져서 오늘날까지 표준적 전술로 이어지고 있다. 제24비행대대는 핀란드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영국제 글로스터 게임콕 III 전투기를 사용했다. 이후 1937년 네덜란드제 포커 D.XXI 전투기로 주력기체가 교체되었다.2. 2. 겨울전쟁 (1939-1940)
1939년 11월 30일 소련이 핀란드를 공격했을 당시 제24비행대대는 여전히 포커 D.XXI를 사용하고 있었다. 헬싱키에 대한 폭격으로 전쟁 첫날에만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포커 전투기들은 폴리카르포프 I-16, 폴리카르포프 I-153 같은 소련 전투기보다 성능이 열등하다고 여겨졌기에, 핀란드 전투기들은 불필요한 손실을 막기 위해 적 전투기와 교전하기보다는 적 폭격기를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최초의 격추는 12월 1일에 이루어졌으며, 투폴레프 SB 폭격기 11기가 핀란드 공군에게 격추되었다. 최초의 피격추는 아군 오인사격으로 인한 것으로, 핀란드의 대공포가 핀란드 전투기를 격추시켰다. 악천후로 인해 전쟁 중 여러 차례 공중작전이 중단되었지만, 제24대대는 12월 19일 I-16 전투기 2대를 포함해 적기 12기를 격추하여 1939년 12월 말까지 총 54기를 격추했다. 핀란드군의 피해는 1기 격추, 1기 파손 뿐이었다. 공군이 선전을 거둠과 동시에 육군 역시 모든 전선에서 붉은 군대의 진격을 막아냈다.요르마 사르반토는 4분 만에 일류신 DB-3 폭격기 6기를 격추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쳐 24대대 최고 에이스이자 핀란드 공군 전체 최고 에이스가 되었다. 1940년 1월 말까지 핀란드군은 적기 34기를 격추시키고 1기를 잃었다. 이로써 대대 병력은 항공기 28기로 줄어들었다.
1월 말이 되자 소련 전투기들의 전술이 바뀌어서 낙하탱크가 도입되고 소련 조종사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소련 전투기들은 폭격기를 핀란드 내륙 깊숙히까지 호위했고 때로는 전투기 40-60 기가 떼로 핀란드 내륙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2월 1일, 붉은 군대는 카렐리야 지협의 만네르헤임 선을 돌파하는 것을 목표로 공세를 개시했다. 제24비행대대는 전선을 순찰하면서 아군 지상병력을 보호했다. 2월의 어느 날에는 하루에 88회 출격을 할 정도로 바빠졌다. 활동이 길어질수록 부담과 손실이 누적되었다. 제24비행대대는 2월에 적기 27기를 격추하고 6기를 잃었다. 격추되어 사망한 조종사 중에는 덴마크인 의용병도 두 명 있었다. 이제 대대 병력은 항공기 22기로 줄어들었다.
3월이 되자 육상 전투 무대가 비보르그 만 방면으로 옮겨갔다. 붉은 군대는 얼음을 건너 남부 핀란드로 침공하려 했고, 핀란드 공군 전체가 동원되어 이 공세를 막아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제24비행대대는 이때 154회 출격하였다. 3월 13일 모스크바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제24대대는 겨울전쟁 발발 시점에 전투기가 36기였고 종전 시점에는 22기가 남았다. 적기 120기를 격추했고 그 중 100기는 폭격기였다. 손실은 11기였고 그 중 적에게 격추된 것은 9기, 2기는 아군의 오인사격이었다.
; 겨울전쟁 당시 제24비행대대 에이스
- 요르마 사르반토: 13기 격추
- 빅토르 퓌외트시애: 7.5기 격추
- 타투 후하난티: 6기 격추 (1940년 2월 29일 격추되어 사망)
- 페르에리크 소벨리우스: 5.5기 격추
2. 2. 1. 겨울전쟁 주요 에이스
- 요르마 사르반토: 13기 격추
- 빅토르 퓌외트시애: 7.5기 격추
- 타투 후하난티: 6기 격추 (1940년 2월 29일 전사)
- 페르에리크 소벨리우스: 5.5기 격추
2. 3. 휴전기 (1940-1941)
1940년 4월 19일, 제24비행대대는 주력 기종을 미국제 브루스터 239 버팔로로 교체했다. 이 기종은 당시 핀란드 공군 최고의 전투기로 평가받았다. 대대는 라흐티 동쪽 베시베흐마로 주둔지를 이전했다. 소련과 핀란드 사이의 관계는 매우 긴장된 상태였으며, 양측 모두 전쟁 재발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14개월간 지속된 평화 기간 동안, 제24비행대대 조종사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며 전투력을 강화했다. 지상에는 조기경보 시스템이 구축되어 적기 발견 시간을 단축시켰다.2. 4. 계속전쟁 (1941-1944)
1941년 6월 25일, 소련의 공격으로 계속전쟁이 발발하자 제24비행대대는 브루스터 버팔로 전투기로 참전했다. 전쟁 첫날, 제24비행대대는 피해 없이 적 폭격기 10기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다. 6월 25일에서 30일 사이에는 핀란드 남부를 방어하며 MBR-2 수륙양용기 2기와 PE-1 1기를 포함, 총 17기의 적기를 격추했다. 이 과정에서 사고로 버팔로 1기를 손실했다.7월 3일, 제24비행대대는 란타살미 공군기지로 이동하여 제2비행연대 전체, 제12비행대대와 제16비행대대, 제4비행연대의 브리스틀 블렌헤임 폭격기와 함께 카렐리야 육군의 작전을 지원했다. 7월 8일부터 소련군의 공격에 맞서 자체 피해 없이 적기 11기를 격추했다. 1941년 말까지 제24비행대대는 2기 손실(1기는 적에게 격추, 1기는 사고)에 적기 135기를 격추하는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1941년 12월 말, 핀란드 육군이 작전 목표를 달성한 이후 계속전쟁은 참호전 양상으로 변화했다. 소련 공군은 호커 허리케인 IIA와 IIB 등 신형 전투기로 재무장했고, 무기대여를 통해 핀란드 전선에 투입되었다. 북부 카렐리야에 주둔하던 제14비행대대는 구형 포커 D.XXI를 사용하고 있어 소련의 신형 전투기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이에 제24비행대대 병력 일부가 티크섀르비 방면 방어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미그-3 및 허리케인과 교전하여 처음으로 전투 손실(버팔로 3기 격추)을 입었지만, 동시에 소련군 8기 이상을 격추했다.
1942년 겨울, 호글란드 전투에서 제24비행대대는 전투기 6기로 지상 병력을 지원했다. 일마리 유틸라이넨은 적기 2기를 격추하며 총 20기 격추를 기록,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받았다. 핀란드군은 섬을 점령했고, 이후 제24비행대대는 핀란드만에서 북부 카렐리야에 걸쳐 방공 전력을 보조했다. 9월 8일에는 요르마 카르후넨도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받았다.
한편, 소련군은 LaGG-3, La-5, Il-2 스투르모비크, Yak-1, Yak-7 등 더욱 발전된 전투기로 재무장했다. 1943년 초, 제24비행대대의 버팔로는 24기로 줄어들었고, 독일제 메서슈미트 Bf-109G 신예기로 제34비행대대가 편성되었다. 제34비행대대에는 일마리 유틸라이넨(당시 격추수 34기), 에이노 루카넨(당시 격추수 14.5기) 등 제24비행대대 최고 에이스들이 차출되었다. 7월 31일에는 한스 빈드 대위가 격추수 31기를 기록하고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받았다.
1944년 초, 제24비행대대는 "제24전투비행대대"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버팔로는 17기로 줄어들었다. 이후 Bf 109G로 기종 전환을 시작, 1944년 5월에는 Bf 109G 14기를 운용했다. 1944년 6월 9일, 소련의 대공세에 맞서 제24비행대대는 카렐리야 지협 남부 술라얘르비에 주둔하며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6월 14일 시란매키-쿠테르셀캐 전투에서 벌어진 대규모 항공전에는 1,700여 기의 소련 군용기가 동원되었다. 6월 15일, 제24비행대대는 라펜란타 공항으로 이동했다. 6월 17일, 라우리 니시넨 중위(당시 격추수 32.5기)와 사르야모 중위(당시 격추수 12.5기)가 메서슈미트 충돌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 제3공격비행단 쿨마이 분견대가 핀란드에 파견되어 큰 도움을 주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제공권을 장악하여 조선인민군 지상군에 큰 타격을 입혔던 것처럼, 계속전쟁에서도 제공권 장악은 매우 중요했다. 제24비행대대는 핀란드 공군의 핵심 전력으로서 소련 공군에 맞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며, 핀란드의 독립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핀란드 공군은 열세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소련 공군에 큰 피해를 입히며 제공권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2. 4. 1. 계속전쟁 주요 에이스
일마리 유틸라이넨: 94기 격추 (핀란드 공군 전체 최고 에이스, 이중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한스 빈드: 75기 격추 (이중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에이노 루카넨: 56기 격추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올라비 푸로: 36기 격추
닐스 카타야이넨: 35.5기 격추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라우리 니시넨: 32.5기 격추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작전 중 사망)
큠스티 카르힐라: 32기 격추
요르마 카르후넨: 31기 격추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 수훈)
에밀 베사: 29.5기 격추
타피오 예르비: 28.5기 격추
2. 5. 종전과 해체 (1944-현재)
1944년 9월 핀란드와 소련의 단독 휴전으로 계속전쟁이 종결되었다. 그때까지 제24비행대대는 총 763기의 적기를 격추하고 30기(그 중 적에게 격추된 것은 26기)를 손실했다. 교환비로 따지면 제24대대 전투기 1기를 격추하기 위해 소련 전투기 29.3기가 희생된 격이었다. 제24비행대대 조종사 중 네 명이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받았으며 두 명은 2회 수훈받았다.1944년 12월 4일 제31비행대대로 개칭되면서 제24대대는 소멸했다. 제31대대는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중인 부대이며 F-18을 주력기로 사용 중이다.
3. 역대 지휘관
- 리하르트 로렌츠 소령, 1933년 7월 15일 - 1938년 11월 21일
- 구스타브 에릭 마그누손 중령, 1938년 11월 21일 - 1944년 12월 4일
- 요르마 카르후넨 소령, 1944년 12월 4일 - (제31전투비행대대로 개칭, 24대대 소멸)
4. 부대 편제
4. 1. 겨울전쟁
겨울 전쟁 당시 제24비행대대는 5개 편대로 구성되었으며, 주력 기체는 포커 D.XXI 36기였다. 제1편대와 제2편대는 각각 6기, 제3편대는 6기, 제4편대는 7기, 제5편대는 10기의 포커 D.XXI를 보유하였다. 또한, 부오렐라 분견대, 루카넨 분견대, 아홀라 분견대, 실래이넨 분견대, 키비넨 분견대가 있었다.
4. 2. 계속전쟁
계속전쟁 기간 동안 제24비행대대는 브루스터 F2A 버펄로 34기를 주력으로 운용하였다. 전쟁 후반에는 메서슈미트 Bf 109G 29기가 추가되어 버팔로 일부를 교체하였다.제24비행대대는 4개의 편대와 별도의 분견대로 구성되었다. 제1편대는 버팔로 9기, 루카넨 분견대로 구성되었고, 제2편대는 버팔로 8기, 아홀라 분견대로 구성되었다. 제3편대는 "기사편대"라고도 불렸으며 버팔로 8기를, 제4편대 역시 버팔로 8기를 운용하였다. 또한, 제34비행대대 제1편대가 제24비행대대에 배속되어 있었다.
5. 운용 기종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